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우리는 비추는가
- 극단 ‘하땅세’,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 인터뷰 -
일정/장소: 2026.4.25.(토) 17:30~19:00/아시테지 코리아 회의실
인터뷰이: 연출가 윤시중, 배우 김채연(극단 ‘하땅세’)
인터뷰어: 손옥주(공연학자)
같은 인물, 같은 사물은 주관의 영역에서 시시각각 다른 크기, 다른 강도로 다가온다. 극단 ‘하땅세’의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에는 그 다름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카메라가 등장한다. 배우들의 손과 손을 넘나들며 누군가의 동선을, 무엇인가의 형태를 다양한 크기로 실시간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고정불변이라고 인식되어 온 것들을 불변의 지형에서 탈출시키는 동시에 창작자들이 그리고자 하는 서사적 방향성을 강화하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극단은 어린이 관객을, 그들의 관극 경험을 고민한다. 이 작품으로 <2026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극단 ‘하땅세’의 윤시중 연출가와 김채연 배우를 만나 창작의 막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손옥주: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으로 제22회 아시테지 겨울축제 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인터뷰에 앞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시중: 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좋았지만, 이번에는 수상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는 수상 자체보다도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까 하는 부분이 더욱 중요했거든요. 관객분들이 저희 공연을 얼마나 찾아줄지, 그리고 저희 공연이 얼마나 유통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어요. 그동안 소극장 규모의 연극을 만들어오면서 극단의 운영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대극장 규모의 공연을 처음 시도하면서, 우리가 작업해 온 방식을 좀 더 확장해서 대극장을 채워보자는 목표와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수상 소식도 너무 기뻤지만, 이제는 대극장용 공연도 유통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어 뜻깊었다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김채연: 이번 작품으로 대상뿐만 아니라 연기상까지도 받았는데요. 너무 기뻤던 점은 수상 자체를 넘어서서 많은 분이 저희 극단의 작업 방식이나 연기에 관한 질문을 해주셨다는 거예요. 극단의 많은 부분을 관심 있게 봐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씀들이 참 감사하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손옥주: 이 작품의 초연 버전과 이번 아시테지 버전이 상당 부분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해서 <걸리버 여행기>를 공연으로 만들게 되신 건지, 창작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윤시중: 처음부터 ‘<걸리버 여행기>를 공연으로 만들어 보자’라는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공연으로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연의 형식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우리 극단의 오에바다 배우가 극단의 안식년 기간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 그 배우의 이야기가 걸리버 여행기와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오에바다 배우가 호주를 다녀온 후에 크고 작아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초연작을 만든 거죠. 그 이후에 이 작품을 가족극 형태의 대극장용 공연으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손옥주: 동화로도 각색된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고전인데요. 아시테지 축제의 경우에는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축제를 표방하는 만큼, 어린이 관객 문화와 관련한 전반적인 이해와 경험이 창작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 이야기를 카메라의 줌인-줌아웃 기술과 연결한 제목에서부터 예술과 기술의 접목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요. 이 작품에는 어떤 기술적인 주안점을 두신 건지 궁금합니다.
윤시중: 기술 활용의 경우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대극장이라는 공간 환경 때문에 선택한 것인데요. 대극장을 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영상을 떠올리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공연들 가운데 영상을 쓰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라서 오히려 영상 사용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매우 한정된 무대 재료와 배우들로 대극장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프로젝션 영상이 필요했어요. 그런 점에서 기술 사용은 필요에 따라 선택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정작 공연에서 활용된 기술은 최첨단의 하이테크라기 보다는 핸드폰을 가지고 라이브로 촬영하는 방식처럼 우리 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도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창의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준 거죠. 고도의 기술 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 카메라를 가지고 실시간 상황을 찍으면서 관객의 상상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 간 거예요.
김채연: 저는 배우 입장에서 처음엔 대극장 공연이라면 영상이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이 잘 보이도록 해서 관객들에게 환상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식으로 연습을 해보니까 ‘내가 관객 앞에 설 때 어디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건지, 카메라가 관객인 건지’ 등등 혼란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아지더라고요. 그동안은 배우로서 항상 관객을 인지하며 연기를 했는데, 카메라가 들어오는 대극장 무대에 서려니 관객 대신에 카메라를 인지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됐어요. 그때 저희 극단의 문숙경 대표님께서 배우의 움직임이 영상에 어떻게 해서 나타나게 되는 건지, 그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 말씀을 참고해서 연습에 임하니까 정말로 모든 게 너무나 개운하게 해결되더라고요. 내가 영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내가 무엇을 행하는지를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보이는 것, 바로 그게 핵심이겠구나 싶었어요. 예를 들어, 작은 나무 오브제 하나를 제가 들고 있더라도 영상에서는 나무만 보이겠지만 그 나무를 들고 있는 제 모습까지도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연기에 임하다 보니 영상과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조율하는 방식을 찾게 된 거죠.
손옥주: 이번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의 역할이 연기뿐만 아니라 장비를 직접 다루는 테크니션으로까지 적극 확장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 공연을 위해 배우들이 특별히 수행해야 했던 훈련이나 발전시켜야 했던 연기법 등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채연: 저희가 원래는 이 공연을 소극장에서 시작했잖아요. 거기서는 카메라가 모든 걸 너무나도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이 중요했어요. 소극장에서는 섬세한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데, 손과 카메라가 조금만 떨려도 화면 전체가 흔들렸거든요. 그 후에 대극장으로 넘어오니까 배우들 모두가 배우이면서 동시에 촬영 감독을 겸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됐던 거죠. 게다가 촬영하다 보니까 극장 조명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카메라 옆에서 배우가 조명까지 비춰야 했거든요. 조명 각도에 따라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섬세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게 소극장에서와는 무척 다른 점이었어요. 각도가 단 1cm라도 달라지면 환상이 깨지니까 저희로서는 그런 부분을 예민하게 연습할 수밖에 없었죠. 처음 영상 촬영을 연습할 때는 씬 하나를 몇 시간씩 찍어보곤 했는데, 대극장으로 넘어오면서 배우들 간에 서로 통하는 지점들이 점차 생기며 오히려 공연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카메라를 잡는 배우들의 섬세함이 돋보이기도 했고, 본인이 상상하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해서 참 좋았거든요. 소극장 때부터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옥주: 카메라의 고유한 편집 기술을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상상력의 확장을 불러오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은 오차가 큰 리스크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뜻하는데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새로이 경험하신 흥미로운 점이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시중: 일단 무대에서 카메라의 줌인, 줌아웃 기능을 이용함으로써 디테일한 장면을 원할 때는 디테일하게, 공간을 가득 채우기를 원할 때는 가득 채우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극장 공연에서 모든 것을 영상으로만 대체하는 것보다는 커다란 오브제를 하나 놓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실제 배우와의 대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커다란 과일이나 신발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최소한의 제작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문득 풍선으로 만든 샤인머스캣을 떠올렸어요. 대극장에 어울리는 대형 오브제를 만들면 극단에서 보관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이건 풍선이니까 철거하기에도 너무 쉬웠고 우리 작업 방식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밖에도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연이다 보니까 작업 초창기에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배우들과 ‘1분 영화제’라는 것도 진행했었어요. 배우들이 각자 핸드폰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서 아이디어를 하나씩 제안하는 것이었는데, 함께 볼 때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많더라고요. 대부분의 영상이 생각보다 극장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거죠. 하지만 어쨌든 ‘1분 영화제’는 저희에게 좋은 워크숍 경험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핸드폰 기능을 활용한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거든요.
김채연: 저희도 연습을 통해 발견한 건데, 뒤쪽에 영상 프로젝션을 위한 커다란 스크린이 있고 앞쪽에 상대적으로 작은 배우가 있다면 둘이 절대로 잘 붙지 않더라고요. 어우러지지 않는 거죠. 이 경우처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연극은 연극이구나, 그러니까 영상과 사람의 크기를 단순히 대조한다고 해서 크고 작게 보이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손옥주: 그럼 오늘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포함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채연: 주변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덕분에 올해도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 공연을 화성, 세종, 김천, 거창 등 좀 더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윤시중: 저희 극단의 레퍼토리 작품을 공연으로 올릴 때마다 작품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데요.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제가 이렇게 적어놨어요: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 정체성을 향해 계속해서 작품을 다듬어나갈 예정이에요. 사실 거리감이라는 건 내가 어디에 서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세계를 경험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부모님들께 ‘공연 관람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정말 훌륭한 교육 방식’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교과목 교육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아이를 극장에 데리고 와서 때에 따라 불편하고 지루한 공연을 본다는 건, 그냥 평소처럼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 되는데 굳이 불편하게 공연 날짜에 맞춰 아이와 함께 공연장을 찾는다는 건, 정말 그 자체로 아이들의 미래에 대단한 혜택을 주는 거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극장은 나와 맞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하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석 앞뒤로 불편하고, 때에 따라서는 누군가가 마구 웃거나 시끄럽게 하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 불편함을 몸으로 온전히 느끼는 곳이 바로 극장이잖아요. 저는 극장이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장에서는 모두의 반응도, 웃음 포인트도 다르죠. 다른 사람의 반응을 견디며 이해해줘야 할 때도 있고, 관람료는 똑같이 냈지만 내 앞줄에 앉은 누군가가 나를 가리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뒤에 앉을 수도 있고 앞에 앉을 수도 있는데요. 극장의 이런 불편함을 함께 즐기는 아이들은 분명 미래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